오늘 성당에 가지 않았다 by WaltzMinute



 오늘 성당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오늘 미사에 가지 않았다. 나는 모태신앙 천주교 신자이다. 일요일 미사를 빠져본 적이 평생 손에 꼽는다. 아팠거나, 출장을 갔거나 하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면 웬만하면 일요일 중 1시간은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그것은 내가 열성적인 신자였다기 보다는 가족들이 모두 일요일에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은 자의로 미사를 가지 않았다. 사실 미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집을 나섰는데, 1시간을 거리에서 방황하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성당에 가지 않은 것은 어제 너무나도 충격적인 뉴스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에서의 내 개인적 경험들을 환기시키며 성당에 가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대구 희망원 사태로 인해 염수정 추기경을 면담하고자 했던 장애인 단체를 경찰을 불러 막는 교회의 모습을 봤다. 사실 염수정 추기경이 구설수에 많이 오른 인물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천주교인으로서 불편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본 뉴스는 성직자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린 교회, 진흙탕에서 구를 수 있는 교회를 얘기하는 교황(아래에서는 교종이라고 표기)의 목소리는 바다 건너 한국 교회에서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불편한 마음에 몇몇 기사를 더 찾아봤다. 김기춘이 "건전 인사"로 염 추기경을 일컬으며 세월호 사태에 대한 친정부적 목소리를 칭찬했다는 기사, 인천성모병원 노조 탄압에 압장서며, 심지어 추기경 명의로 신자인 노조원들을 고소했다는 기사, 서소문 공원 개발과 관련된 편법 논란 등, 하나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소식이 없었다. 물론 이런 논란에 모두 염 추기경이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이 염 추기경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염 추기경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염 추기경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잘못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의견이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원인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예화 하나. 신부가 사회 문제에 대해 미사 중에 발언하거나 하면 미사 이후 그 신부는 호된 항의를 듣는다. 때로는 신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정교분립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교분리라는 단어만 가지고 신부를 비난한다. 교회는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주는 곳이 되서는 안 된다. 삶이 힘들 때 위로를 주는 것도 분명 종교의 역할이긴 하지만, 그것은 종교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성경에 보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 51)라는 구절이 있다. 교회는 듣기 싫은 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신자들과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주는 성직자가 교회를 망쳐왔다. 듣고 싶은 얘기를 하고, 듣고 싶은 얘기를 듣는 종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비판에 정당성을 줄 뿐이다.

 예화 둘. 각 성당마다 사목회라는 이름의 평신도 조직이 있다. 사목회는 주임 신부를 보좌하는 일종의 의회라고 보면 된다. 사목회는 의회처럼 주기적으로 회의를 갖고, 의원들이 각 분과를 맡아 성당의 재정 상태를 자문하고 관리하거나, 행사를 조직하는 등 성당의 실질적인 행정을 맡는 기구다. 그러면 사목회에는 누가 참여할까. 소위 그 지역에서 명망 있고 품위 있는 중년남성들이 참여한다. 교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기구가 경제적, 정치적, 세대적, 성적으로 편향되게 되는 것이다. 사목회는 그들 인사들의 경제적, 사회적 자본을 뽐내는 왕좌가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얼마 전 발표된 2015 통계청 조사 결과에 의하면 천주교 신자 수는 전체 인구 대비 7.9%로, 2005년 조사 결과의 10.8%에 비해 무려 3% 가까이 빠졌다고 한다. 물론 2005년 당시 통계청 조사 방법이 통계를 과장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수치만 놓고 보면 심상치 않은 변화인 것은 확실하다.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그 10년은 명동성당 재개발로 상징되는 가톨릭의 상업화, 보수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 안에서 빈자, 진보주의자, 젊은 세대, 여성은 설 자리가 없다. 다시 내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보겠다. 나는 천주교회 안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편향된 사목회가 주축이 된 교회는 청소년과 청년을 소비할 뿐 그들을 보살피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청소년과 청년은, 성당 행사가 있을 때 나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재롱잔치의 대상이거나,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불러지는 노동력의 대상일 뿐, 성당 행정의 한 축이나 사목의 한 파트너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예화 셋. 한 번은 내가 속한 교회 내 단체가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단체는 참가자들의 봉사, 그것도 주말을 거의 바쳐야 하는 고강도의 봉사로 유지되는 단체였는데, 주임신부가 바뀌며 참가자들의 단체의 운영에 봉사자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몇개월을 참고 참다가 한 가지 계기가 생겨 나는 모임 자리를 도중에 박차고 나왔고, 교구에서 파견된 단체 지도자와 단체 주임 신부의 연락을 받았다. 단체 지도자로부터는 내가 단체에 참가하기로 한 이상 지도자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동의를 얻은 것 아니냐는 식의 민주집중제를 연상시키는 말을 들었고, 주임 신부로부터는 가톨릭의 순명에 대한 지루한 설교를 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며 나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들이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내가 거기에 "순명"하길 바랐을 뿐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한가지 예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 예화는 교회의 한계를 무척이나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에서 성직자로, 성직자에서 상급 성직자로, 개별 성당에서 중앙 교구로 가는 목소리에 대한 장벽이 무척이나 두텁다. 때문에 교회는 정체된 교회로 남아 세상의 움직임으로부터 오히려 뒤쳐지게 된다.

 나는 이런 예화들이 한국 가톨릭 교회의 문제점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문제가 부조리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염 추기경의 실수들, 희망원 사태, 인천 성모병원 사태 등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성당에 가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신앙으로서의 가톨릭에 돌아선 것은 전혀 아니지만, 공동체로서의 가톨릭에는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떤 위치에 서야 할지 아직은 고민 중이다. 다만, 부디 교회에 대한 내 고민이 교회에 대한 회피로 끝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글

  • DS 2017/02/06 09:16 # 답글

    성당 합창단에서 지휘자의 성차별적 발언을 지적하자 싫으면 니가 나가라는 식의 대응을 당했다던(?) 한 여신도의 사연이 떠오르네요. 안타깝습니다.
  • WaltzMinute 2017/02/07 22:55 #

    저도 그 얘기 들었어요. 보면서 어이 없었는데, 결국 언론도 타고 인권위 권고도 받으면서 결국 지휘자는 처분을 받았더라구요. 근데 부적절한 대응을 했던 담당 신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가톨릭의 폐쇄성 문제 아닌가 싶어요.
  • 2017/02/06 11: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2/07 22: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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