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 미술관, 마크 로스코 by WaltzMinute




1.
 2009년쯤 교양으로 미학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일반적인 학부생이라면 미학은 고사하고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게 당연했기 때문에, 미학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로 넘어가기 이전 커리큘럼의 전반부는 미술사를 쭉 훑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미술사 강의가 근대를 지나 현대로 진입할 무렵, 나는 프로젝터로 강의실에 투영되던 바넷 뉴먼의 색면 추상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숭고 미학을 거들먹 거리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자체로 숭고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아직 잊지 못 한다. 내가 그 뒤로 전시회를 열심히 찾아 다니는 것은 어쩌면, 그때의 그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2.
 마크 로스코는 바넷 뉴먼과 함께 미국 추상 표현주의을 주도했던 작가이다. 그의 "멀티폼" 작품들은 색면 (color field) 추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한국에서 추상 표현주의 거장들의 전시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크 로스코 전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마크 로스코 전은 굉장히 잘 기획된 편에 속한다. 전시된 작품들 중 마크 로스코의 대표작도 꽤 있었고, 그의 작가 커리어 전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기, 중기, 후기에 걸쳐 균형 있는 전시 작품 선정이 이루어졌다. 작품 감상을 위한 조명이나 분위기 조성도 수준급이었으며, (때로는 중요성이 간과되는) 감상 동선 구성도 잘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들이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통 반출하지 않는 작품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놓친다면 이 작품들을 다시 한국에서 보기는 힘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치명적인 단 한 가지만 빼면. 전시관 벽에는 마크 로스코를 좋아했다고 하는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고, 이 전시를 찾은 셀러브리티의 사인이나 사진이 출구를 장식했으며, 여기저기 붙어 있는 강신주의 “당신은 마크 로스코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말은 도발적인 것을 넘어 모욕적이었다. 이는 전시의 마지막 부분 "시그램 벽화"와 대비되며 전시 자체를 역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시그램 벽화는 원래 마크 로스코가 뉴욕 시그램 빌딩의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에 걸릴 목적으로 의뢰받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시즌 레스토랑의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접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작품 계약을 취소했다. 과연 스티브 잡스, 애플, 강신주 등으로 점철된 전시관의 분위기는 마크 로스코가 자신의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질색했던 시그램 빌딩의 분위기와 얼마나 다를까? 굉장히 역설적인 부분이다.

3.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로. 카톨릭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 바넷 뉴먼이나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번 전시에서 재현된 로스코 채플은 그런 관점에서 굉장히 재미 있는 곳이다. 언젠가 한 번 텍사스 휴스턴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덧글

  • 2015/05/11 00:18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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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4 09:14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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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4 10:53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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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1 21:4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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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3 05:1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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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4 09:1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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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5 00:3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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