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말하기, 그리고 책읽기 by WaltzMinute



 책읽기는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행위이다.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결국 책읽기는 나와 책과의 만남이다. 그 사이에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해석은 나만의 것이고,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 또한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다른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푼크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작품 감상을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두 개의 측면으로 나눴다. 스투디움은 사회문화적 배경 아래, 누구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감상이다. 반면, 푼크툼은 개인적인 기억이나 잠재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나를 “아프게 하는” 감상이다. “타인의 고통과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오르한 파묵, <눈>)라고 오르한 파묵이 울부짖었던 것처럼, 푼크툼은 나만의 고통과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그것을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런 사실들 때문에 어쩌면 책읽기는 무척이나 고독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읽기가 어떤 활동보다도 적극적으로 사람을 향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마음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때로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 더 잘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읽는 책이나,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왠지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해진다. 흩어진 정보들 속에서 단서를 찾는 탐정소설의 주인공처럼 나는 그 사람이 읽는 책을 읽으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그 사람만의 생각과 감정들의 조각들을 찾는다. 예를 들면, “인생의 비밀이란 변화하는 감정을 잘 돌보는 데 있다.”(오스카 와일드, <위트 앤 위즈덤>), “기억이라는 말은 기억이 과거를 탐색하는 도구가 아니라 과거가 펼쳐지는 무대라는 것을 오해의 여지 없이 밝혀준다.”(발터 벤야민, <베를린 연대기>),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우리는 그 일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모든 균열은 붕괴보다 앞선다. 하지만 붕괴가 일어나야만 우리는 균열의 시점을 알 수 있다.”(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런 문장들을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찾으며 나는 조금이라도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읽은 책의 궤적을 뒤쫓아 가는 독서가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반대로 책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누군가에게 더 잘 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때로는 책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잘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어느 한 구절을 내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통해서 나는 푼크툼의 제약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우리의 관계와 상황 속에서 책은 재해석되고, 혼자만의 공간을 허용하던 독서라는 행위는 두 사람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어질 수 있다. 연인에게 “너에게 더 잘할게”라는 상투적인 말보다, “힘들여 노력한 일의 내재적 보상으로서 바로 행복이 존재하게 됩니다.”(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이라는 문장을 읽어주고, 불안해하는 친구에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라는 시구를 읽어주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진심을 잘 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책을 나눈다는 것이 “듣고 말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통해 누군가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들 사이에는 수많은 장벽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끊임 없이 노력하는 한 그것들을 넘어설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다.

 글의 마지막은 김연수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윤리다.”(김연수, <타인의 삶>)

덧글

  • hogh 2013/11/25 02:43 # 답글

    인용의 힘이란 역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 WaltzMinute 2013/11/25 20:26 #

    과찬이십니다^^;
    쓰면서 인용문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왕 많은 거 팍팍 인용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썼던 글이에요ㅎㅎ 큐레이션의 시대니까요ㅎㅎ
  • Djinne 2013/11/25 12:40 # 답글

    공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WaltzMinute 2013/11/25 20:27 #

    감사합니다 :)
  • 2013/12/03 20: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2/04 09: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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