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different by WaltzMinute




 일을 "잘 끝내고" 싶다면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익숙한 패턴을 따르면 된다. 그러나 일을 "잘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모두 따르는 방법은 평범한 결과물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는 절대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르게 생각해야만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똑같은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두 명의 예술가는 미술사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나의 예술가는 유일한 하나의 화풍을 가진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화풍을 가지는 예술가는 있을지언정, 다른 화가와 똑같은 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미술사에 흔적을 남길 수 없다. 그는 그저 흔한 모사 화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통해 태어난 결과물은 때로 기존 체제에 비가역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모두가 여성복에서 코르셋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코코 샤넬은 코르셋을 없앴다. 그리고 코코 샤넬 이후 어떤 여성도 코르셋을 입지 않는다. 혁신을 위해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표현은 "~해야 한다"이다. 어떤 일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사람이 만든 것이다. 자연법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이 만든 것에 필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이 성역이 될 때 위험도 함께 발생한다. 노예제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그것이 사회와 경제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며, 심지어는 도덕적인 시스템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노예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킨 이후, 오늘날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 노예제만큼 악독한 것은 거의 살아남아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는 수많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그 부조리의 많은 부분들이 고정 관념, 즉, 기존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기존의 것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비유를 들다보니 옛것들을 마치 악인 것처럼 매도하는 식이 되어버렸는데, 사실 대부분의 옛 방식들은 나쁘기보다는 옳거나 뛰어난 것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가능한 방법들 중에서 오늘날 남은 옛 방식들은 진화적으로 그것이 가장 우수한 방법이기 때문에 살아남아, 일종의 스탠다드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것들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방식은 가장 우수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고, 단지 인습으로 굳어지거나, 그것이 선입관이나 낡은 도덕관과 가장 마찰을 적게 일으키기 때문에 살아남은 방법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당연함들 사이에서 당연하지 않음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 혁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철학자가 될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부정한 끝에, 생각하는 자아만을 남기고, 그 자아를 토대로 나머지 것들을 쌓아올린 것처럼, 우리는 철학자가 될 필요가 있다.

 Cogito ergo sum

 다르게 생각하자. 모든 당연한 것을 의심해야 한다. 데카르트가 그러한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한 뒤에 당연함을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철학자의 방법론으로 쌓아나가다 보면, 대부분의 당연함은 당연함으로 남는 것이 옳다고 판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의심하기 전에 당연해보였던 것이 철학자의 눈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는 것이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고 바꿔야 한다. 내가 과학자로 받은 훈련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일상적인 연구에서 대부분의 의심은 내가 읽는 논문이나 책이 결국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의심의 결과로 틀림을 밝힐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혁신을 낳는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기는 단순히 결과물의 질을 결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다르게 생각하기가 단순한 성과주의 방법론에 그칠 뿐이라면 그것은 단지 기술이나 기교에 그칠 뿐이다.-그런 것이었다면 애초에 내가 이것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기는 더욱 복잡한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낮은 층위에서 그것은 성과주의 방법론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층위에서 그것은 윤리학과 만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연하지 않음, 즉, 부조리는 수많은 당연함들 사이에 숨어 있다. 다르게 생각하기는 그러한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기는 윤리와 만난다. 보이지 않는 불의를 찾아내는 윤리로서의 다르게 생각하기.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한 점진적인 부조리의 발견이 결국은 더욱 도덕적인 삶(개인적 수준)과 도덕적인 세상(일반적 수준)으로의 진보를 낳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기가 윤리이므로,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기에 수반되는 수고를 포용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든 어렵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기존의 스탠다드를 따르면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탁월도 윤리도 낳지 못 한다. 그것은 평범일 뿐이고, 심지어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부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르게 생각하기는 윤리의 영역에 속한다.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서 우리가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때로는 나의 주장이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을 아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래도 의기소침해서는 안 된다. 꿋꿋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기가 윤리의 층위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그 수고를 책임으로 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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