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히가시미쿠니의 아침, 낯선 곳에 친밀함의 파편을 뿌려놓기 (2/23 셋째날) by WaltzMinute




2010, 2/23, 히가시미쿠니의 아침
 시험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첫날을 정신 없이 보내고 나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오사카에서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몸이 약간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잠을 깨고 침대에서 잠시 누워있는 몇 초 동안, 아침 공기가 꽤 산뜻하게 느껴졌다. 약간 서늘했지만 춥지는 않은, 약간 습한 기분을 주는 완연한 봄 공기였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7시 50분쯤이었다. 피곤해서 늦잠을 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옆 침대에 누워있는 친구는 피곤했던 모양인지 깊이 잠들어있었다. 나도 조금 더 잘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잔다고 해도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아침의 조용함을 누리고 싶어서 다시 자지 않기로 했다. 잠을 깨려고 노트북에 랜선을 연결해서 간단하게 뉴스와 메일 확인을 하고 샤워를 했다. 씻고 나니 9시쯤 되었는데 친구는 아직 일어나려면 한참 먼 것 같았다. 나는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고 산책이라도 할 마음으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어딜 갈까 하다가 일단 마트를 가보기로 했다. 어제 호텔 근처에서 "gourmet city"라는 이름의 마트를 봤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일종의 아날 학파적인 호기심이었다.- 마트로 향하는 길은 지하철 역과 반대편이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나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오사카 사람들의 표정이 한국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대부분이 화사한 색감의 피트되는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고, 오사카 사람들이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탄다는 것도 함께 느꼈다. 그것은 한국과 다른 점이었다.
 마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5분 거리도 안 되는, 정말 말 그대로의 코앞이었다. 마트에 들어가니 이른 아침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점원들은 그날의 장사를 준비하느라 박스를 나르고 물건을 진열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몇몇 사람들은 간단한 아침 거리를 사러 한가하게 마트 안을 걷고 있었다. 나는 사람 구경이 주된 목적이었지 딱히 무언가를 사러 온 것은 아니어서 그냥 물건들을 찬찬히 훑어보기만 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맥주 캔 사이즈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맥주 같은 경우, 짧고 뚱뚱한 캔과 길쭉한 캔 두 종류가 있는데 일본 맥주는 정말 다양한 사이즈가 있었다. 소주 잔보다 약간 더 큰, 손가락 길이 만한 캔부터 한국에도 있는 길쭉한 캔까지 다양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마트에 와서 빈 손으로 나가기도 민망하기도 해서 밤에 먹을 양으로 맥주를 두 캔 샀고, 안주로 초콜렛도 샀다.
 마트에서 나와서는 한 손에 맥주 캔과 초콜렛을 넣은 하얀 비닐 봉지를 들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큰 길가 뒤편으로 가면 아파트와 보통 주택들이 늘어져 있는 골목이 있었는데, 나는 마치 내가 동네 주민인 것 마냥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내가 걸은 그 골목에는 여러 풍경이 있었다. 볕이 드는 길 한 편에서 유모차를 끌고 대화를 하고 있는 젊은 아기 엄마들, 아침 일찍 길가를 물 청소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할아버지, 어디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교복을 입고 바쁘게 뛰어가던 고등학생. 그리고 그들이 사는 다양한 인상의 집들. 나는 그런 모습들이 좋았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여행을 하면 늘 알지 못하는 집들에 시선을 줄 때가 있다고 했다. 나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나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몇몇 집들을 홀린 듯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때가 있다. 어떤 집은 그들이 행복하건 불행하건 간에 언제나 일정한 삶의 프로그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며 그래서 어떤 삶에의 초대라고도 할 수 있다. 저 집에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집이란 어느 것에나 어떤 알지 못할 과거와 어떤 빛나는 미래-혹은 그 반대-가 서려 있는 법이다.   - 미셸 투르니에, 외면 일기, p24.
 그 집들을 보는 것은, 낯선 이들의 생활을 보는 것임과 동시에 내가 이곳에서 산다면 어떨까 하는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친구랑 했던 많이 했던 얘기가, "여기서 살아도 괜찮겠다" 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상상한 미래의 가능성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만 해도 나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졸업반 학생이었고, 오사카를 찾은 이유도 유학을 위해 GRE를 보러 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까운 미래에 미국 대신 동경대같은 곳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은 내가 그 사회 속에서 경계인으로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낯설고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곳은 다름에서 나오는 불편함이나 고향과 먼 거리에서 오는 불안감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고 닮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면 어떤 집에서 살게 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 정말 궁금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산책을 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눈동자 속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낯선 지역에서 어느 한 작은 부분에 친밀감을 심고 싶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곳에서의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은 마치 내가 이미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것처럼 그 장소에 친밀함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내가 이런 방법으로 여행을 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행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정말 안전한,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에 가까운 그런 방법이다. 그것은 이미 유명해서 충분히 개발된 관광지를 두둑한 지갑을 들고 순례하는 방법이다. 거기에 가이드까지 동행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편한 여행 방법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찾는 방법이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것이, 남들이 가보지 않거나 거의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야 하기에 불편한 점이 꽤나 많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그 방법은 첫 번째 방법이 주지 못 하는 것을 줄 수 있다. 그런 불편한 여행 방법을 통해 낯선 여행지의 어떤 한 부분에서 나만이 알 수 있는 식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 장소는 낯선 곳이 아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낀 곳, 내가 어떤 생각을 발견한 곳, 내가 어떤 기억을 되찾은 곳으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그런 가까운 장소가 되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먼 곳에 내가 친밀함을 느끼는 장소의 파편들을 흩뿌려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런 여행이 가지는 가장 낭만적인 부분일 것이다.
 오사카의 히가시미쿠니에는 아직도 여전히 그 파편들과 그 낭만들이 내가 놓은 그대로 놓여있을 것이다. 내가 소박하게 원하는 것은 10년이 지나기 전에,-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에서의 10년. 꼭 물리적인 시간으로써의 10년일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그 풍경들이 크게 바뀌어서 내가 알아보지 못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그 친밀함의 파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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