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5 : 사회적 자살 by WaltzMinute



 그 순간 그는 자살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방에서 목을 매달거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진짜 자살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는 그럴 정도의 이유도 없었고, 죽음의 고통을 맞이할 용기도 없었다. 다만 그는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는 일종의 "사회적 자살"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그가 남긴 모든 발자취를 지우는 일이 될 것이었다. 먼저 모든 인간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핸드폰을 없애고 메신저 아이디를 삭제하고 아무런 소식도 없이 낯선 곳으로 이사 하는 식으로 모든 연락을 끊을 것이었다. 다음으로 그가 할 일은 지금까지 그가 이루었던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어느정도의 커리어가 쌓인 상태였다. 그러나 사회적 자살을 하기로 한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내일 회사에 사표를 낼 것이며 직장을 박차고 나와 다시는 그가 일했던 그 분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증발"해버리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과연 그의 부재를 느낄 수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위치와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사회적으로 자살을 해야만 할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이상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뚜렷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자살하는 사람들처럼 그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자신을 "설명"하려고 노력해본다면 어느정도는 이유를 들 수 있었다. 그는 먼저 인간 관계에서 회의를 느꼈으며, 다음으로는 자신이 일하던 분야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맞는 것인지, 즉,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모든 족적과 존재를 지우고 죽임으로써, 무의미하지 않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시도조차도 무의미하며, 그 시도가 어쩌다 성공하더라도 그가 가질 새로운 삶은 이전의 삶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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