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관계의 틈과 낯선 이들 by WaltzMinute




헨릭 입센, 인형의 집, p.151.
헬멜 : (슬픈 어조로) 그렇소, 나도 알았소-알아들었다고. 우리들 사이에는 분명히 커다란 틈이 있소- 아, 그러나 노라, 그틈은 메워질 수 없는 것일까?
노라 : 지금과 같아서는 저는 당신의 아내라고 할 수가 없어요.
헬멜 : 나도 딴 사람이 되어 보이겠소.
노라 :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당신의 손에서 인형이 치워진다면요.

헨릭 입센, 인형의 집, p.153.
헬멜 : 하지만 틀림없이 나는 당신에게 뭔가 보낼 수 있을 텐데.
노라 : 아무것도-아무것도 안 된다니까요.
헬멜 : 당신이 필요할 때 도와준다든가.
노라 : 아니에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요, 낯선 사람한테서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니까요.
헬멜 : 노라-나는 당신에게 낯선 사람 이상의 것이 될 수는 없단 말이오?
노라 : (여행 가방을 집어 든다) 오, 톨발-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멋진 기적이 일어났어야만 했던 거예요.
헬멜 : 그 멋진 기적이란 어떤 것인지 말해 줄 수 없겠소?
노라 : 우리 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야 했던 것인데-오, 톨발, 저는 더 이상 기적 같은 것은 믿지 않게 됐어요.

 입센의 "인형의 집"은 근대 여성 인권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노라의 "나는 더 이상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은 근대 여성의 탄생을 알리는 선고이기도 하며, 여권 신장을 위한 기나긴 투쟁-오늘날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미 있는 사실은 입센은 스스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쓴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여성해방동맹이 주최한 그의 70세 생일 파티에서 그는 "저에게 주신 건배에는 감사합니다만 제가 의식적으로 여성해방을 위해서 공헌을 했다는 명예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저로서는 여성해방이란 어떤 것인지조차도 잘 알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제가 해온 일이란 인간의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묘사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작가는 스스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 연극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극에 대한 해석의 층위는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인형의 집"을 페미니즘 극으로 분석한 관점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고, 아마도 그 해석은 "인형의 집"의 표준적인 해석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여성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인간의 문제, 즉, 관계의 문제에 대한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작품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는 가족일 것이다. 특히 남편-아내, 아내-남편의 부부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를 제외한다면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그런데 그 관계-삶 속에서 가장 가까운-가 분열되어 있는 것이라면? 극에서 헬멜과 노라는 부부 사이인데 극의 초중반까지만 해도 부부는 꽤나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서 헬멜은 "우리 사이에는 분명히 커다란 틈이 있소."라고 절규한다. 슬픔으로 가득 찬 그 절규는 가장 가까운 관계조차도 커다란 틈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이나 다름 없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나머지 다른 관계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입센은 예쁘게 채색된 관계의 표면을 걷어내고, 마치 수학자처럼 관계의 분열성을 증명해낸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고,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약간의 희망도 있다. 그것은 노라가 말하는 "가장 멋진 기적"이고, 극의 마지막 순간 헬멜이 포착한 "희망"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관계를 믿고-또는 믿는다고 생각하고-, 관계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약간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고, 연약한 우리의 관계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주기적으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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