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즈 엔드, 로맨스=낭만적 아름다움과 성과주의 by WaltzMinute




 E.M. 포스터, 하워즈 엔드, 141p.
  마거릿은 우리 일상의 혼란된 속성을 깨달았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빚어내는 정돈된 배열과는 다르다. 우리의 생활은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는 잘못된 단서와 푯말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엄청난 노력과 용기를 기울여서 오지도 않을 위기에 대비한다. 가장 성공한 인생은 산이라도 옮길 만한 힘을 낭비한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성공하지 못한 인생은 준비 없이 기습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데 기습이 닥치지 않는 인생이다. 이런 종류의 비극에 대해 우리 영국의 도덕은 당연히 침묵을 지킨다. 위험을 대비하는 것은 그 자체로좋은 것이고, 사람이건 국가건 완전 군장을 갖춘 채 비틀거리며 살아 나가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준비된 인생의 비극은 그리스인들을 빼고는 제대로 다룬 자들이 없다. 인생은 진실로 위험하지만, 도덕이 말하는 방식의 위험은 아니다. 인생은 진실로 버거운 대상이지만, 그 본질은 전투가 아니다. 인생이 버거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이기 때문이고, 그 본질은 낭만적 아름다움이다.
  마거릿은 앞으로 과거보다 주의를 덜 기울이며-더 기울이는 게 아니라- 살게 되기를 희망했다.
 현대 사회에서 성과주의(meritocracy)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점차 개인의 영역에까지 그것이 적용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예전에 서울대에서 이루어진 한 설문 조사에서는 학생들이 놀 때 가장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즐거움을 위해서 놀지만, 반대편에는 불안도 함께 생겨난다는 아이러니-그것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발생하는!-는 성과주의가 개인의 영역까지 미칠 때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는 직접적, 간접적으로 개인에게 성과주의 규칙에 따라 살아 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배워야 하며, 끊임없이 새로와져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욱 슬픈 사실은 그것을 듣는 젊은이들 스스로가 그 논리를 내재화하고 재생산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최고로 효율적이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라는 것은 인생이 전투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듯이, 인생은 로맨스이며 낭만적 아름다움이고, 이어야만 한다. 우리의 삶이 로맨스=낭만적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전장으로 보지 않고, 전장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효율성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성공한 인생은 산이라도 옮길 만한 힘을 낭비해야만 한다. 물론 미래와 삶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시간을 그저 흘러 가는 대로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주의를 미래와 삶에 기울이고 있고, 그 주의를 조금 덜어내더라도 우리의 삶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삶을 전투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를 스놉(snob)*의 시선으로 깎아 내리지 않고, 그것이 가진 낭만적 속성을 직시하며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E.M. 포스터는 하워즈 엔드의 시작을 "단지 연결하라"라는 헌사로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즐거움과 불안함 속에서 분열되고, 삶이 로맨스와 성과주의의 사이에서 분열되는 이 때에, 20세기 초에 영국 사회의 분열을 바라봤던 E.M. 포스터의 진단을 오늘날에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스놉 : 알랭 드 보통은 타인의 일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사람들을 스놉(속물)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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