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츠에서 느낀 여유에 대하여 (2/22 둘째날) by WaltzMinute



2010, 2/22, 우메다에서 길을 헤매던 중
 여행은 본질적으로 내가 속해 있던 장소, 내가 서 있던 대지를 상기시킨다. 이국적인 풍경을 봤을 때 외부인으로서 느끼는 신기함이라는 감정을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그 속에는 내가 있던 곳에서 가져온 감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나카츠에서 느낀 여유로움에 대한 이끌림도 마찬가지이다. 그 것은 내가 한국에서 느끼던 감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일 뿐이었다. 나는 늘 붐비는 장소가 비어있는 것을 좋아해왔다. 또는 한 발자국 떨어진 한가한 장소에서 붐비는 장소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새벽의 지하철 역, 오전 시간의 고등학교 주변, 새벽까지 이어지는 사람의 물결이 사라진 아침의 라페스타, 명동이나 인사동의 뒷골목. 이런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그런 곳에 있으면 나는 몇 가지의 복합적인 느낌을 느낀다. 나는 그러한 곳에서 마치 성역에 들어 온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이 지나간 뒤 남은 사람의 여향(餘香, remaining fragrance)를 맡으며 좋아하기도 하며,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을 혼자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한다.-그러나 이처럼 탑 노트와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를 분석하듯 내 감정을 분석해봐도, 언제나 기표는 기의 위를 미끄러진다. 나의 조잡한 언어는 나의 푼크툼(Punctum)을 재현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나는 오사카의 중심지 우메다에서 조금 떨어진 나카츠를 좋아했고, 인파로 복잡한 곳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우메다의 거리를 좋아했으며, 퇴근 시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히가시미쿠니 역 뒷편의 골목길을 좋아한 것이다.
서울에서 오사카까지의 거리 800 km (출처 : Google 지도)
 그렇다면 왜 나는 그런 장소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으로부터 나는 여행이 본질적으로 내가 속한 장소를 보는 일이며,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왜 그런 장소들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을 돌아 봐야 한다. 내가 속한 장소로부터 800 km나 떨어진 곳에서 느낀 나의 감정을 떠올리고 기록하는 것은 바로 그 것 때문이다. 나의 장소 선호는 결국 나의 성향을 말해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속한 존재"이기 보다는 "주변적 존재"로 있기를 선호했으며, 많은 경우 그 선호를 따라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그로부터 얻는 자유(또는 배제)는 나를 편안하게 했다. 아마도 나의 장소 선호는 이러한 나의 성향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소극적이며 동시에 적극적인(무엇에 대하여?) 자세는 변하기 힘들 것이고, 앞으로도 나는 그런 장소들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나카츠에서, 우메다에서, 히가시미쿠니에서 이러한 것들을 느꼈고,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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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상한 일이야 2010/04/26 02:51 # 삭제 답글

    나는 언제나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주변적 존재"이기 보다는 "속한 존재"로 있기를 선호했으며, 많은 경우 그 선호를 따라 어디든 속해 있었다. 그러부터 얻는 소속감(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아마도 나의 이런 장소 선호는 이러한 나의 성향을 반영한 것 - 이어야 할텐데 하지만 나도 늘 붐비는 장소가 비어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햇빛이 마지막으로 쏟아지는 오후 네시경의 휑한 지하철 칸(건대에서 강변 사이의 2호선이나 옥수를 지나는 3호선)이 따스한 주황빛이 되는 순간이나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새벽 무렵 밤새고 열람실에서 나왔을 때의 까치가 깍깍 거리는 텅 빈 학교 같은 것들.

    나는 나의 성향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 아니면 이중적인 그 모두가 나의 성향의 일부일 뿐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시험이 12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뭐하고 있는 걸까 두둥
  • WaltzMinute 2010/04/30 01:26 #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은데,
    아마도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하고, 다른 식으로 생각이 되기도 해.
  • 아랏삐 2010/05/07 01:55 # 삭제

    다른 식으로 생각 되는 건 어떤 식이야?
  • WaltzMinute 2010/05/07 20:55 #

    하두 오래전이라 뭐였는지 생각이 안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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