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과 옛 정신의 실종 by WaltzMinute




(광화문 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지난 8월 1일 광화문 광장이 개장되었다. 서울시는 육조거리의 복원을 통해 광화문 광장을 역사적 장소로 만들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개장된 광화문 광장은 외형적 치장에 그쳤을 뿐 "광화문"이 지니는 정신적 가치를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 광화문 앞은 신문고를 통해 민의를 최고 통치자인 왕에게 직접 전달하는 곳으로써 역할을 하였다. 해동연표 세종 10년 기록에는, "신문고를 관장하는 자를 파직함(罷掌申聞鼓者職)"이라는 기사가 있다.
한 사람이 광화문(光化門)의 종을 치고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므로 승정원에서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의금부의 당직원(當直員)이 치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종을 쳤습니다.”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문고를 설치한 것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칠 수 있게 하여, 아래 백성의 사정이 위에 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금하였는가. 만약 진술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죄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니, 북을 관리(管理)하는 관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마는 이와 같이 금지를 당한 사람이 반드시 여러 사람일 것이다.”고 하며 파직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광화문 광장은 어떠한가?
 서울시는 새로이 개장된 광화문 광장은 시민의 쉼터와 문화 공간이기 때문에 집회를 금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그러한 문화적 혜택과 여가를 누릴 여유조차 없이 사회, 경제적 모순 속에서 하루, 하루 힙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민주 사회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집회와 시위로 인한 경제적 손실까지도 우리가 안고 가야할 몫이며, 민주주의에 대해 지불해야할 몫인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지은 것이며, 따라서 광장은 그들의 것이 되어 진정한 소통의 공간이 되야 한다.



* 게다가 지난 촛불 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중 가요를 부르고 하나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의 시대는 지났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한바탕 노는 "호모 루덴스의 파티"로서의 시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문화 행사와 새로운 형태의 집회-시위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서울시와 정부 당국의 논리대로라면, 정부 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그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두기만 한다면, 공권력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질 것은 당연해 보인다.
* 물론 조선시대의 신문고 또한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광화문 광장은 신문고 제도에 있던 옛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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