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303일 후 by WaltzMinute

1.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 그 날을 d day로 등록하고 그로부터 지난 날짜를 샜다. 문득 그것을 확인해보니 오늘로 이곳에 도착한지 303일이 되었다. 두달이 모자란 1년이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런 노력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인 좋은 벗들도 만났고, 늘 그렇듯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만났다. 내가 앞으로 여기서 얼마 만큼의 시간을 더 보낼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이곳에서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2. 이글루스에 들어오면 마치 오래 떠나 있던 집, 이사 가서 더 이상 발길이 닿지 않지만 정겨운 집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이곳에서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가 한 3~4년 정도 전인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 지금은 이글루스보다 브런치에 글을 더 자주 올리기는 하지만, 브런치는 이글루스 만큼 편하지 않다. 각 잡고 '잘 쓴 글'을 올려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때로 내가 쓴 문장과 단어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을 때 브런치는 조금 무겁다. 오늘이 그런 밤이다. 기분이 썩 편하지 않은 밤에 그렇지 않은 척 회의를 하고 다가올 몇 개의 회의 준비를 하고 난 뒤 지친 상태에서 '잘 쓴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저 편하게 브라우저를 키고 싱글 몰트 위스키를 미즈와리로 준비한 뒤 아무도 읽지 않을 법한 글을 누군가 읽을 수도 있는 공간에 올리는 것이 지금 내게는 최고의 휴식이다.

3. 내가 이글루스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 알게 된 동생이 지난 몇 년 간 준비하던 꿈을 이뤘다는 소식을 어젯밤에 들었다. 사실 지난 몇 년 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친구에게는 평생의 꿈이었다. 듣기에 무척 기쁜 소식이었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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